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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통치 조직의 이해 종교는 무력과 더불어 고대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다른 집단을 복속시키고 지배하는 데 무력은 필수였지만 그것은 대립과 갈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항구적인 통치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국가의 각 지역 구성원들이 공동체의식을 갖게 하려면 종교를 통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했다. 고대사회에서는 종교가 정치 위에 있어서 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에 그러한 조처는 당시로서는 매우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것이었다. 그동안 한국 고대사회에 대한 연구에서는 종교가 다소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종교에 대한 이해 없이 고대사회를 바르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종교가 고대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음은 세게 어느 지역에서나 고대의 인류역사가 신화로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고.. 2024. 1. 4.
고조선과 한의 관계 고조선과 한의 관계를 구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국의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후한서'와 '삼국지'에 한이 진국과 연관을 가지고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과 진국은 모두 고조선의 거수국이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진국에 관한 가장 빠른 시기의 기록은 '사기'에 보인다. 그 기록에 따르면 "위만의 아들을 거쳐 손자 우거 때에 이르러서는 천자에게 입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번 옆의 진국이 글을 올려 천자를 알현하고자 하는 것도 가로막고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위만조선과 진국 및 서한의 간계를 말해주고 있다. 위 '사기'의 인용문 가운데 진국은 '사기' 정의본이나 송본에는 진국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오늘날 통용되는 판본에는 중국, 즉 '여러 나라'로 디.. 2024. 1. 3.
고조선의 국가 구조 고조선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을 싣고 있는 한국 문헌인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에서 고조선의 국가 구조를 직접 설명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고조선의 국가 구조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 '제왕운기'에 보인다. '제왕운기'에는 "처음에 어느 누가 나라를 열고 풍운을 인도하였던가. 석제의 손자 그 이름은 단군일세."라고 하고 그 주석에 다음가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단군천왕은 손녀에게 약을 먹도록 하고 사람이 되게 하여 단군신과 결혼시켜 아들을 낳게 하였다.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는데 조선 지역에 거주하며 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신라, 고구려, 남북옥저, 동북옥저, 예와 맥은 모두 단군을 계승한 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라, 고구려, 남북옥저, 동북옥저, 예, 맥 등을 모두 단군이 다스렸다고 .. 2024. 1. 3.
창해군 위치에 대한 종래의 견해 그동안 한국사 학계에서는 창해군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듯하다. 한국사 사전들에 창해군에 대한 독립 항목이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내용이 아주 빈약하다. 창해군에 대한 통념을 알기 위해 먼저 사전류에 나타난 창해군에 대한 설명을 보면 "B.C 128년 무렵 한이 예맥이 투항을 받아들여 그곳에 설치한 군현." "지금의 강원도 지방에 있던 군명. 한 무제가 원삭 원년에 동예 지방을 정벌하고 그곳에 두었는데 3년 후에 폐지하였음. B.C 128년 한무제가 만주 요동 지방에 있던 예맥의 땅에 설치한 행정구역. 당시 위만조선에 예속적 관계를 가지고 있던 예군 남려가 조선왕 우서와의 관계를 끊고 그가 지배했던 28만의 인구와 함께 한나라에 내속을 청하자 한의 무제는 이곳에 창해군을 설치하였다." 위의 내용.. 2024. 1. 1.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의 관계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위치를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사군의 상호 관계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서로 계승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오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들은 동일한 지역에 위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기자라는 인물부터 고찰해 보자. 기자는 중국 상 왕실의 후예로서 기라는 제후국에 봉해졌던 자라는 작위를 가진 제후였다. 상나라의 갑골문에서는 기자가 기후라는 칭호로 나타난다. 상나라에는 제후의 작위로서 후, 백, 자, 부 등이 있었는데 후가 대표적인 작위였으므로 기자는 기후라고도 불렸던 것이다. 기자는 고대 중국의 여러 문헌에 보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기록인 갑골문에서도 보이므로 실존했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기자의 성은 자였고 이름은 서여였다. 고대 중국에서 작.. 2023.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