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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도읍지에 관한 사료 고대사회에서 도읍은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점은 고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므로 고조선의 중심지를 확인하는데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할 것은 도읍지가 어디였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고조선의 도읍지에 관해서는 '삼국유사'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위서'에 이르기를 지나간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라는 이가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열고 이름을 조선이라 하니 요와 같은 시대였다."고 하여 '위서를 인용하여 고조선의 첫 도읍은 아사달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사달에 대해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을 주석하기를 "경에는 무엽산이라 하였고 또한 이르기를 백악이라고도 하는데 백주 땅에 있다. 또는 개성 동쪽에 있다고도 하는데 지금의 백악궁이 그것이다."라고 했다. 즉 아사달.. 2023. 12. 31.
고조선의 건국 연대 고찰 고조선의 건국 연대는 서기전 2333년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연대는 고조선 당시의 기록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고조선이 붕괴되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기록에 나타난 것이므로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편의상의 연대일 뿐이다. 편의상의 연대라는 말은 믿을 수가 없으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조선의 건국 연대가 서기전 2333년인지 또는 그보다 몇 년 앞이나 후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한 언급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이다. 먼저 '삼국유사'를 보면 "'위서'에 이르기를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일컬으니 요와 동일한 시기라고 하였다." ".. 2023. 12. 30.
한국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남북 국경 한국 문헌 가운데 고조선에 관한 가장 기본이 되는 사료는 고려시대에 저술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제왕운기'다. 조선시대의 역사서에 보이는 고조선에 대한 언급은 대부분 이 기록들에 대한 해석이나 주석 또는 고증들에 불과하며 그렇지 않은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고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고조선 연구의 기본 사료로 채택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불필요한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삼국사기'와 ' 삼국유사, '제왕운기' 기록만을 한국 문헌의 기본 사료로 삼고자 한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고조선에 관한 독립된 항목이 없다. 가장 일찍 고조선에 대한 항목을 설정하고 언급한 책은 '삼국유사'인데, 그 '기이'편에도 고조선의 강역이나 국경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내용은 전혀.. 2023. 12. 30.
고대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시대의 패수 패수에 대한 종래의 인식을 검토하기 위해 먼저 패수가 고조선과 관계를 가지고 나타난 기록을 보면 '사기'에 "연나라 전성했던 시기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군리를 두기 위해 장새를 쌓았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요동외요에 속하게 하였다. 한이 일어났으나 그것이 너무 멀어서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경계로 삼아 연에 속하게 하였다. 연왕 노관이 서한에 반기를 들고 흉노에 들어가자 위만도 망명을 했는데 천여 명을 모아 무리를 만들고 틀어올린 머리에 오랑캐 옷을 입고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빠져나와 패수를 건너 진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거주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패수는 위만이 망명하기 이전 서한 초부터 고조선과 중국의.. 2023. 12. 29.
고조선 후기의 서쪽 경계 고조선이 붕괴된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고조선이 중국의 서한 초가지 존재해 있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의 전국시대와 진제국시대, 서한 초기는 고조선 후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중국 영토에 관한 기록을 통해 고조선의 서쪽 국경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진제국의 영토에 관한 기록은 그러한 작업을 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진제국은 전국시대에 중국에 있었던 여섯 나라를 모두 멸망시키고 출현한 통일제국이었으므로 진제국의 영토는 전국시대의 중국영토를 모두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제국이 멸망하고 건국된 서한은 무제시대 이전에는 진제국보다 영토가 확장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진제국의 영토는 전국시대로부터 서한 초에 이르기까지의 중국 영토를.. 2023.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