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건국 연대는 서기전 2333년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연대는 고조선 당시의 기록에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고조선이 붕괴되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기록에 나타난 것이므로 그것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편의상의 연대일 뿐이다. 편의상의 연대라는 말은 믿을 수가 없으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고조선의 건국 연대가 서기전 2333년인지 또는 그보다 몇 년 앞이나 후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한 언급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이다. 먼저 '삼국유사'를 보면 "'위서'에 이르기를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일컬으니 요와 동일한 시기라고 하였다."
"'고기'에서는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는데 당고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고 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은 위의 내용 가운데 "당고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이라는 기록에 대해 "당고 즉위 원년은 무진인즉 50년은 정사요 경인이 아니다. 아마 틀린 듯하다."라고 주석을 달아놓고 있다.
'제왕운기'에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대해 "처음에 어느 누가 나라를 열고 바람과 구름을 인도하였던가. 석제의 손자 이름은 단군일세. 제고와 같은 해 무진년에 나라 세워, 우의 시대를 지나고 하시대를 거쳐 왕위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기록된 고조선의 건국 연대는 중국의 요와 동일한 시기, 요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 또는 정사년, 용와 같은 해인 무진년 등으로 내용에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중국의 요시대에 해당한다고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런데 요는 중국 전설시대의 황제,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의 5제 가운데 한 사람이며 전설적 인물로서 실존했는지 의문시되기 때문에 그의 연대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고고학이 서구로부터 수입되기 전 한국이나 중국의 학자들은 선사시대의 역사를 신화나 전설에 의족하여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요의 연대도 그들에게는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오늘날 요의 실체나 연대가 의문스럽다고 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기록한 다른 연대까지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안다고 생각된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은 불교 승려였고 '제왕운기'의 저자인 이승휴는 유학자였으므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학문 경향을 지녔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동일하게 요시대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은 고대에 그러한 연대가 상당히 널리 인식되었을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삼국유사'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를 말하면서 '위서'와 '고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 책들은 현존하지 않지만 '위서'는 중국의 역사책이고 '고기'는 한국의 역사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국과 한국의 고대 역사책에 동일하게 고조선의 건국 연대가 요시대로 기록되어 있었다면 그 연대는 상당히 신빙성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서'는 중국 위나라의 역사책일 것인데 현존하는 북위의 역사책인 '위서'나 삼국시대 위나라의 역사책인 '삼국지'의 위서 및 삼국지에 주석으로 실린 '위략' 등에는 고조선의 건국 연대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삼국유사'가 인용한 '위서'는 지금 전하지 않는 책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 역사에는 위라는 국명을 가진 나라가 여럿 존재했고 지금은 전하지 않는 '위서'가 있었음도 확인된다. 따라서 그 책이 현존하지 않는다고 하여 '삼국유사'의 기록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고대 역사서인 '고기'도 마찬가지다. 현존하지는 않지만 '고기'라는 명칭을 가진 역사서가 다른 문헌에도 인용된 것으로 보아 그러한 책이 존재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기록된 고조선의 건국 연대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요와 동일한 시기, 요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이라 했는데 요와 동일한 시기를 요의 즉위와 동일한 시기로 해석한다면 위의 두 연대는 50년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일연은 요는 무진년에 즉위했으므로 요가 즉위한 지 50년은 경인년이 아니라 정사년이라고 수정했다. '제왕운기'에서는 요와 같은 해 무진년이라고 하여 '삼국유사'에서 '위서'를 인용한 요와 동일한 시기라는 연대와 일치하며 요의 즉위 연도가 무진년이라는 것은 일연의 견해와 일치한다.
그런데 '죽서기년'에는 요가 병자년에 즉위했다고 했으며 장행성은 요는 갑진에 출생하여 무진에 당후가 되었고 병자에 제위에 올랐다고 했고 소강절의 '황극경세'에는 요의 원년은 갑진년이라 했다. 이후 주희나 서거정 등은 갑진설을 따르고 있는데 갑골문 학자인 동작빈은 요의 원년은 무진년으로 고증했다.
역사 연대표를 보면 병자년은 서기전 2325년, 갑진년은 서기전 2357년, 무진년은 서기전 2333년이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언급된 경인년과 정사년은 서기전 2311년과 서기전 2284년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기록된 고조선 건국의 기능 연대는 서기전 2357년, 2333년, 2325년, 2311년, 2284년이다. 이 가운데 무진년에 해당하는 서기전 2333년이 오늘날 통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학술적으로는 서기전 2333년은 정확한 연대라고 말할 수 없고 서기전 2400~2300년 무렵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