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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종교와 사상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말하려면 그 명칭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문제에 접근하고자 할 때 그 명칭을 확인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연구나 이해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점은 고조선이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게도 고조선 종교의 명칭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동안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의 종교를 신교, 신선교, 산신교 등으로 불러왔으나 그러한 명칭들은 깊은 연구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고조선의 종교 문제에 접근하는 출발로서 우선 그 명칭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고조선 종교의 명칭을 시사하는 기록이 단편이기는 하지만 '삼국사기'에 보인다 '삼국사기'에 실린 최치원의 '난랑비서'에는 "우리.. 2024. 1. 9.
고조선 사람들의 의식주와 풍속 옷차림은 사람의 생활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고조선에는 이미 매우 발달된 옷을 만들어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사실은 출토된 유물과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함경북도 산봉군 굴포리 서포항 유적의 청동기문화층에서 출토된 흙으로 만든 남자 인형은 모두가 서 있는 형태인데 아랫도리가 넓게 퍼져 있다. 이를 보아 고조선 남자들은 두루마기 같은 겉옷을 입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지'에는 "부여사람들은 국내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식을 숭상하며 흰 베로 만든 큰 소매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고 했는데 부여는 원래 고조선의 거수국이었으므로 부여인들이 입었던 큰 소매 달린 도포는 고조선 때부터 입었던 두루마기 같은 겉옷이엇을 것이다. '후한서'와 '삼국지'에는 "예 사람들은 남녀 모두.. 2024. 1. 8.
고조선 사회의 신분 구성 고조선에는 부여, 고죽, 고구려, 예, 맥, 추, 진번, 낙랑, 임둔, 현도, 숙신, 청구, 양이, 양주, 발, 유, 옥저, 기자조선, 비류, 행인, 해두, 대마, 구다, 조나, 주나, 진, 한 등의 거수국이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공증한 바 있다. 이 가운데 진은 고조선의 중심이 되는 거수국으로서 고조선 최고 통치자였던 단군의 직할국이었다. 그 밖의 각 지역 거수국들은 그곳의 거수들이 통치했는데 단군은 이런 거수들을 거느리는 방법으로 고조선의 각 지역을 간접 통치했다. 따라서 고조선은 통치구조의 측면에서 보면 '거수국제 국가'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고조선의 거수국들은 여러 마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고조선이 건국되기 전에는 각 지역의 마을연맹체로서 고을나라였다. 이런 고을나라들이 고선족의 고.. 2024. 1. 7.
고조선 경제의 생산양식 고조선 주민은 경제 면에서 크게 두 부류로 나눌수 있다. 한 부류는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생산활동에 종사한 사람들일 것이다.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은 지배 귀족들이었을 것이며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피지배 신분이었을 것이다. 고조선에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은 지배 귀족들이 있었음은 다음 기록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삼국지'에 "그 나라의 대가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앉아서 먹는 사람이 만 여명이나 된다. 하호들이 먼 곳에서 양식, 고기, 소금을 운반해서 그들에게 공급한다."고 했다. 이 기록은 고조선이 붕괴된 후의 고구려 상황을 말한 것이지만 고구려는 원래 고조선의 거수국이었고 이런 상황은 고대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있던 것이므로 고조선에도 그대로 적용될 .. 2024. 1. 6.
고조선의 경제적 기반에 대한 사실 고조선은 고고학적으로는 초기부터 천동기시대였고 사회진화상으로는 국사사회 단계였다. 따라서 청동기문화를 뒷받침하고 국가의 통치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것을 받쳐줄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고조선은 일찍부터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의 교류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고조선의 사회와 경제 수준이 결코 낮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을 가능케 한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일주서'에는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던 직신, 예인, 양이, 양주, 발인, 유인, 청구, 고이, 고죽 등이 성주대회에 참석했던 것을 기록되어 있다. '일주서'는 중국 주나라의 역사서인데 성주대회에 관해 기록되어 있다. 주나라는 도읍인 호경이 너무 서쪽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낙양에 제2의 도읍으로 낙읍을 건설하고 그곳을 성주라고 .. 2024.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