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고조선의 종교와 사상

by $램프 2024. 1. 9.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말하려면 그 명칭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문제에 접근하고자 할 때 그 명칭을 확인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연구나 이해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점은 고조선이 종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게도 고조선 종교의 명칭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동안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의 종교를 신교, 신선교, 산신교 등으로 불러왔으나 그러한 명칭들은 깊은 연구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고조선의 종교 문제에 접근하는 출발로서 우선 그 명칭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고조선 종교의 명칭을 시사하는 기록이 단편이기는 하지만 '삼국사기'에 보인다 '삼국사기'에 실린 최치원의 '난랑비서'에는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이른다. 그 교가 세워진 기원에 대해서는 '선사'에 자세하게 실려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에는 풍류라는 현묘한 도가 있었으니 그 기원에 대해 '선사'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사는 선의 역사책이었음을 알 수 있으나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라 풍류도의 기원이 '선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했으니 풍류도의 원명은 선도였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에는 "왕은 환도성이 나리를 치러 다시 도읍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종묘사직을 거기로 옮기었다. 평양은 본시 선인왕검의 택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가 중국 위나라 관구검의 침략을 받아 환도성이 도읍을 할 수 없게 되어 평양성을 쌓고 도읍을 옮겼는데 평양은 본시 선인왕검이 거주했던 곳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325년에 이숙기가 쓴 사공 조연수의 묘지명에도 "평양을 개창한 분 선인왕검일세. 오늘에 이르러 그 유민으로 사공이 계시다네. 평양군자 그분은 삼한보다 먼저인데 천 년 넘어 살았다니 어쩌면 이와 같이 오래도 살았고 선 또한 닦았었나."라고 하여 평양을 개창한 사람이 선인왕검이라고 했다. 그리고 선인왕검은 선을 닦아 장수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단군왕검은 당고가 즉위한 지 쉰 해가 되던 경인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했다.라고 했고 또 뒤에 "아사달로 돌아와 은거하여 산신이 되었고 수는 1,908세를 누렸다."고 했다. 따라서 고조선의 건국자인 단군왕검은 평양에 도읍을 했었고 삼한 이전의 사람이며 수가 1천 세를 넘었다고 전해왔음을 알 수 있으니 위의 '삼국사기'와 조연수 묘지명에 나타난 선인왕검은 고조선의 단군왕검을 말함을 알 수 있다. 단군왕검은 선인으로도 불렸던 것이다. 단군왕검은 고조선의 통치자 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의 최고 지도자였으니 고조선에서는 종교의 지도자를 선인이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고조선의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선이었을 것임을 알게 해준다.

 

이점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사기'에도 보인다. '사기'에는 "이미 제인 서불 등이 글을 오리기를 바다 가운데 삼신산이 있으니 그 이름을 봉래, 방장, 영주라고 이르며 그곳에 선인이 산다고 말합니다. 청하옵건데 재계하고 동남, 동녀들과 더불어 그것을 구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서불을 보내어 동남, 동녀 수천명을 징발하여 바다에 들어가 선인을 구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해 '사기정의'에 주석하기를 "'한서'에 이르기를 이 삼신산은 발해 가운데 있다고 전해오는데 그곳에 사람이 가는데 멀지 않다. 아마도 예전에 그곳에 도달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 선인과 불사의 약이 모두 있다고 전한다."고 했고 또 "'괄지지'에 이르기를 단주는 중국의 동해 가운데 있는데 진 시황제는 서복으로 하여금 동남, 동녀를 데리고 바다에 들어가 선인을 구하도록 했다."고 했다.

 

전 시황제는 불로장생하기 위해 선인가 불사의 약을 구하러 서불과 어린 소녀 소년들을 바다로 보냈는데 그 땅이 중국의 동쪽 바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이며 그 이름은 단주 즉 '단의 땅'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인들이 사는 삼신산은 발해 가운데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산들이 지금의 어느 산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발해도 중국 동쪽의 바다이므로 그 산들 역시 중국 동쪽 바다 가운데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사기'에는 전국시대에 제나라의 위왕과 선왕, 연나라의 소왕 등이 사람을 보내어 바다에 들어가 봉래, 방장, 영주의 삼신산을 찾도록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런데 중국의 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 땅이라면 한반도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제 지역에서 동쪽으로 항해해서 도달할 수 있는 곳은 한반도뿐이다. 그 땅을 단주, 즉 '단의 땅'이라 했는데 이것은 바로 단군이 통치하는 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단군은 '삼국유사'에는 단군으로 '제왕운기'에는 단군으로 '단' 자가 각각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이렇게 단군이 각각 다른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것은 단군이라는 명칭이 원래 한자로 된 명칭이 아니라 순수한 한국 고대어였는데 그것을 한자로 음사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한자를 사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단군의 단은 다른 단자로도 표기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주는 '단군의 나라' 또는 '단군의 땅'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