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무력과 더불어 고대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다른 집단을 복속시키고 지배하는 데 무력은 필수였지만 그것은 대립과 갈등을 동반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항구적인 통치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국가의 각 지역 구성원들이 공동체의식을 갖게 하려면 종교를 통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했다. 고대사회에서는 종교가 정치 위에 있어서 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에 그러한 조처는 당시로서는 매우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것이었다. 그동안 한국 고대사회에 대한 연구에서는 종교가 다소 소홀하게 다루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종교에 대한 이해 없이 고대사회를 바르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종교가 고대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음은 세게 어느 지역에서나 고대의 인류역사가 신화로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쉽게 알 수 있다. 고대인들은 만물에 영이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만물은 신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인산 만사는 신의 섭리에 따라 전개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체험하는 것들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하지 않고 그것을 섭리한다고 믿었던 신의 이야기로 전했다. 고대인들에게 그것은 과학이었다.
고대사회가 종교에 의해 지배되었음은 기록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이른 문자 기록인 갑골문은 그러한 사실을 잘 말해준다. 갑골문은 중국 상나라 후기 서기전 1330년 무렵부터 서기전 1111년 무렵까지의 기록으로 그 내용은 상황이 신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점을 친 기록이다. 상왕은 제사, 천도, 전쟁, 공납, 재해, 농사, 사냥, 질병, 분만 등 종교의식과 국가 중대사부터 사사로운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에 대해 신의 뜻을 붇고 그 결과에 따라 행동했다. 따라서 상나라의 정치는 상왕이 신의 뜻을 대신하여 집행하는 신권통치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중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고 세계 모든 지역의 고대사회에 공통된 것이었다.
고대인들에게 종교는 현대사회에서와 같이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신의 인간 만사와 모든 자연현상을 섭리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의심할 수 없는 과학이었기 때문이다. 종교의식은 무리사회 단계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밎는 조상 숭배와, 만물은 모두 영을 지니고 있다는 애니미즘으로 발전했고, 씨족에 따라서는 동물을 숭배하고 심지어 그것을 그들의 조상으로 인식하는 토테미즘으로까지 발전했다.
따라서 국가가 출현하기 전 각 지역에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씨족들은 그들 나름의 수호신을 정점으로 한 종료를 가지고 있었다. 각 지역의 정치세력을 모아 출현한 고대국가는 이러한 씨족들이 공동체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 각 지역 씨족의 신들을 통합하는 종교 조직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신의 계보가 형성되었는데, 그 나라에서 가장 강한 지배씨족의 수호신이 최고신이 되고 다른 신들은 그 아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갑골문의 내용은 이러한 사실을 잘 전해준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도고조선이 건국되기 오래전부터 종교의식이 생활 속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마을사회 단계의 유적인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서포항 유적에서 출토된 호신부와 동물의 이나 뼈, 뿔을 조각하여 만든 사람과 동물의 조각을 당시의 주술적 신앙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고을나라 단계의 유적인 요령성 우량하 유적에서 출토된 흙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신상 머리와 신전 터는 이 시기에 종교가 상당한 권위를 가지고 군림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단군사화에 등장하는 환웅과 곰, 호랑이도 고대인들의 종교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하느님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황웅족과 곰은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곰족, 호랑이를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호랑이족 등이 고조선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환웅족은 조선족, 곰족은 고구려족, 호랑이족은 예족이엇던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하느님이 고조선의 종교와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겠지만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신과 씨족들만이 단군사화에 남아 있는 것이다.
단군은 종교의 지도자인 동시에 정치적 총티자였다. 단군이라는 칭호는 몽골어에서 하늘을 뜻하는 탱그리와 뜻이 통하는 것으로 하느님 또는 천군으로서 종교의 최고 지도자에 대한 호칭이었다. 중국에서 최고 통치자를 최고신인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천자로 불렀던 것과 같다. 단군이 종교 지도자에 대한 호칭이었음은 다음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후한서'와 '삼국지'에는 "여러 국읍에서는 각각 한 사람으로써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제하도록 하였는데, 이름하여 천군이라 하였다."
"귀신을 믿기 때문에 국읍들에서는 각각 한 사람을 세워 하느님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는데, 그를 천군이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나라 여러 거수국의 국읍에는 하늘에 제사를 주관하는 종교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를 천군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고조선 붕괴 후 한의 상황을 전하는 것이지만 한은 고조선이 붕괴되기 전에는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에 대한 호칭은 그대로 계승되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후한서'와 '삼국지'에는 부여, 읍루, 고구려, 동옥저, 예, 한 등 한반도와 만주에 있었던 국가들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는데 이 기록은 고조선이 붕괴된 후의 상황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을 제외한 국가들은 고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요서지역에 위치해 있던 고조선의 거수국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