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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실체와 역사적 의의

by $램프 2024. 1. 13.

 

고조선에 관한 새로운 문헌자료나 고고 자료는 그동안 꾸준히 발굴 되었다. 따라서 종래에는 말하기 어려웠던 많은 문제들이 이제는 새로운 자료들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다. 고조선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런 새로운 자료의 증가에 힘입은 것이다. 자료의 증가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므로 새로운 연구 결과도 계속 나올 것이다. 앞에서 연구된 결과들을 묶어 정리하면 고조선의 국명이었던 조선은 문헌에 여러 가지 따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의 조선현, 단군조선 안의 단군 직할국 및 단군조선이 붕괴된 후 단군일족의 후손들이 살았던 지역 등이 조선이라 불렀다. 이들의 위치나 지리 범위는 동일하지 않았다. 따라서 고대 문헌에 조선이라는 명칭이 등장할 경우 그 조선은 어느 조선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종래에는 이런 검증 없이 문헌에 등장한 조선을 모두 동일한 지리 개념으로 받아들여 사료를 해석함으로써 많은 오류를 범했다.

 

그러한 오류는 고조선이라는 용어의 사용에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학계에서는 고조선이라는 용어를 학자에 따라 몇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첫째 단군조선 → 위만조선 → 한사군 조선현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고 둘째는 개념이 불분명한 조선 → 위만조선 → 낙랑군 조선현 등을 포괄한 것이며 셋째는 기자조선을 의미하는 것이고 넷째는 단군조선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는 고조선을 근세조선 이전에 있었던 '옛날의 조선'이라는 의미의 보통명사로 사용한 것이다. 셋째는 단군조선이라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고 중국으로부터 이주한 기자족이 처음으로 나라를 건국했다고 보는 견해이며 넷째는 토착인들이 세운 단군조선의 실체를 인정하고 단군조선만을 고조선으로 본 견해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한국 사함들은 고조선을 단군조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일부 학자들이 사용하는 고조선의 개념은 한국 사람들의 일반 정서와 맞지 않다. 이런 괴리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한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서는 오랜 기간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고조선이라는 용어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처음 등장한다. 그 책에서는 단군조선만을 고조선이라고 했으며 단군조선을 왕검조선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고조선은 원래 단군조선을 의미했으며 그것이 오랜 세월 거치면서 고유명사화 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서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이라는 용서가 갖고 있는 역사성을 도외시하고 자의로 사용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더욱이 위의 여러 조선들은 단군조선과는 지리적 위치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기 때문에 고조선이라는 하나의 명칭 속에 포괄될 수 없다. 단군조선은 토착인들에 의해 건국되어 한반도와 만주를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에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중국의 망명 세력이었으며 한사군의 조선현은 중국 서한의 행정구역이었다. 이들의 위치는 지금의 난하 유역과 요서 지역이었다.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 한사군은 단군조선과 동일한 지역에 있지도 않았고 단군조선을 계승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성격이나 지리적 위치가 단군조선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므로 고조선이라는 명칭에 이들을 포괄시킬 수 없다. 고조선은 단군조선만의 명칭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조선의 국명이었던 조선은 아사달에서 유래되었다. 아사달은 '아침 땅'이라는 뜻이다. 고조선이 건국되기 전 한반도와 만주에는 많은 고을나라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아사달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을나라가 주변의 고을나라들을 통합하여 고조선을 건국했다. 따라서 고조선 건국 중심세력의 명칭이었던 아사달이 고조선의 국명이 되었는데 그것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조선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고조선은 사람들이 정착 생활에 들어가 마을을 이룬 후 수천 년의 오랜기간에 걸친 마을 연합 과정 끝에 출현했다. 그동안 한반도와 만주의 고고 발굴 결과를 보면 지금부터 1만 년 전 이전에는 떠돌이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서기전 8000년 무렵에는 붙박이생활에 들어가 마을을 이루었다. 이 단계에서는 마을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독룁되어 있었으므로 마을사회라고 부른다. 서기전 4000년 무렵에 이르면 여러마을들이 연맹을 맺어 고을을 이루고 정치적 지배자가 출현했다. 이 단계를 고을나라라 부른다. 서기전 2400~2300년 무렵에는 여러 고을나라 가운데 세력이 가장 강했던 아사달 고을나라가 주변의 고을나라들을 통합하여 고조선을 건국했다. 따라서 고조선은 한국사에 최초로 등장한 국가였던 것이다.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출현함으로써 한민족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한반도와 만주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통합된 결과였다. 단군사화의 내용 가운데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기 전의 내용은 한민족의 형성 과정을 말해준다. 환인시대는 떠돌이생활을 하던 무리사회 단계를 의미하여, 환웅시대는 농업을 하며 붙박이생활에 들어갓던 마을사회 단계를 의미하고 환웅과 곰녀의 결혼은 여러 마을들이 연맹을 맺었던 고을나라 단계를 말한다. 그리고 단군왕검에 의한 고조선의 건국은 국가사회 단계에 진입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민족의 형성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한민족을 형성한 주체 세력은 일찍부터 한반도와 만주에 거주했던 토착인들이었다.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부분적으로 이주민들이 들어왔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들이 토착인들을 누르고 주체 세력이 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